[07.10.9~10] 이반 피셔의 정상탈환 음 악

내한을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겠다고 다짐한 3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이반 피셔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미하엘 플레트네프의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모두 첫 공연이 굉장히 좋았거나, 지휘자가 굉장히 내 취향(...)이거나, 둘 다거나의 경우.
이번에 그중 하나인 이반 피셔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가 내한했다.


10월 9일, 예술의 전당 오후 8시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pf. 김선욱)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
(앵콜) 바르톡, 루마니아 무곡
          도흐나니, 왈츠

10월 10일, 세종문화회관 오후 8시
글린카,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vn. 장유진)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앵콜) 브람스, 헝가리 무곡 21번
         슈트라우스, 폴카(였나?;)



사실 프로그램만 보면 세종문화회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당삼 10일만 갔겠지만, 김선욱이 베토벤도 브람스도 아닌 쇼팽을 한다길래 호기심 발동. 결국 양일 다 갔다;;;;

레오노레 서곡이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나 둘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린카 곡을 더 좋아하는데다 이 곡을 지휘할 때의 지휘자는 정말 깜찍했다. 이 곡들로 슬슬 몸 풀어주시고.

이후 협연곡들.
일단 김선욱의 쇼팽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쇼팽에서도 우직한 면모를 보여 약간 당황. 내 취향은 아니었다. 김선욱에게는 쇼팽보단 역시 브람스와 베토벤이 더 잘 어울린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의 멜링꼴리도 괜찮을 거 같지만,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일단 보류. 이건 21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들으면 확인될 테다.
장유진은 가늘고 호리호리한 미소녀로 일단 눈이 굉장히 즐거웠다. 연주도 생각보다 소리가 크고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눌리지 않아서 조금 놀랐지만, 역시 차 바협은 기준이 너무 높다. 정경화~~~~~~
하지만 두 곡 다 협연자와 BFO와의 협연에 있어 약간 갸우뚱한 부분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자리배치나 해석도 기존과는 많이 달랐는데, 가끔씩 엇박자처럼 느껴져서 끙~소리가 나오더라. 한마디로 협주곡은 지난 백건우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비해 기대 이하였다.
때문에 첫날 김선욱의 쇼팽을 듣고는 음, 사인 안받아도 되겠어라고 생각했더랬지.

하지만 2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은 1부의 아리송함을 뒤로 하고 정말 감탄이 나오더라.
처음부터 꽝꽝 울리는 관에서 느껴지는 일체감. 투박하면서도 매끄럽게 날아가는 현의 소리. 엄청난 볼륨에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고요를 느끼게 하는 곳에선 확실한 정적을, 크게 울려주는 부분에선 헉-소리가 나올 정도의 박력. 그래. 이게 러시아의 음악이지ㅠ.ㅠb
차이콥스키 4번의 경우, 몇 번을 들어도 잘 모르겠는 곡 중 하나인데;;; 엄청난 질감에 아, 이렇게 근사한 곡이었나 놀랐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원래 완소 교향곡. 특히 3악장의 선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들을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감탄하는데, 이번 내한공연의 최고 기대곡이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르지 않게, (저번 플레트네프의 차 5번 정도는 아니었지만) 첫음부터 기대했던 대로였다. 때론 우울하면서도 낭만적인 감성이 뚝뚝 흐르는 이 곡을, 헝가리 오케스트라 어떻게 이렇게 근사하게 연주하는 걸까 ㅠㅠ
압도적으로 교향곡이 근사했다. 협연곡보다 100배는 더!

이반 피셔와 BFO는 궁합이라는 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둘이 하나다. 때론 폴짝 뛰어가며 웃으며, 큰 동작으로 감싸안는 지휘자. 연주하면서도 서로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주자들. 보기도 좋다. 관객들을 보면서도 함박 웃어주는 연주자들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연주 자체도 굉장히 흡족했지만, 무엇보다 이반 피셔의 매너는 최고였다.
이제까지 공연 줄줄이 다니면서 한국말로 앵콜곡 소개해준 지휘자는 이반 피셔 씨가 처음이다.
꼬부라진 목소리로 "신사 숙녀 여러분, 이번에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곡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21번입니다~"같은 '대사'를 들으니, 정말 감동! 머릿속으로 열심히 외운 걸 떠올리는 게 여실한데, 그게 너무 귀엽고 또 좋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인회 때 한사람한사람 "굿 이브닝", "땡큐"를 연발하며, 짧은 대화까지 나눠주는 그 인자한 웃음에 반해버렸어ㅠㅠ
지난 내한 때도 관객을 배려하는 매너에 감탄했는데, 그 사이 대사의 길이까지 업그레이드되셨다.
실제로 인품도 훌륭한듯, 수행한 알바생들에게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너무나 기분 좋고 따뜻한 만남이었다는 말이 자자하다.

2년 전엔 국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때문인지 티켓 값이 이보다 쌌던 것으로 생각된다. 2년 사이 표값이 폭등한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첫 내한에서 이들의 소리에 놀라고 반한 사람도 많았을 거고, 말이 길었지만 어쨌든 비싸다는 소리다ㅠ.ㅠ 
그래도 다음 공연에 꼭 가겠다는 다짐을 배반하지 않은 공연이었다.

BFO의 아름다운 소리, 그리고 지휘자 이반 피셔의 너무나 젠틀한 매너. 이 공연을 계기로 좋아하는 지휘자 넘버원 테미르카노프 할아버지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하셨다ㅠㅠ

테미르카노프 씨 제발 건강 조심하시고, 빨리 다시 와서 1위를 탈환해주세요!


덧글

  • 루간스키 2010/12/09 12:22 # 삭제 답글

    아 저 이번에 봤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아 그래서 앵콜곡을 독일어로 했군요!! 멋지신..독일에서 공연봤거든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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